자비심과 사랑이 없는 이들에게

지지사 개인에게도 이런 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블로그를 돌보지 못하였습니다.
한참이나 포스팅이 없는 곳을 찾아 주시는 분들
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헛걸음을 하시게
만든 죄, 사죄 드립니다. 여러분의 짧은 시간이
나마 낭비하게 만든 셈이니까요.
        지지사는 목하 동면 중입니다. 잠이 깨어날
지 하염없이 웅크리고 있을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각성하는 날을 기대해 봅
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일에 휩쓸려 죽고, 방사능이 누출
되어 커다란 위기에 빠졌는데도, 그 모습에 환호를 하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커다란 절망감을 느낍니다.
일본에 유학했거나 생활을 했던 많은 이들이 지닌 역사에
대한 콤플렉스는 분명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지지사 역시
과거의 역사에서 어쩌면 그리도 못난 조상을 가졌을까
슬픔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의 상처가
60년이 지난 당시의 세상을 살던 지지사에게까지 뼈저리게
느껴졌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지사는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였던 대상 보다는 거의 아무런 실질적 저항도
못했던 우리의 조상들에 대한 원망이 컸었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힘도 없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 자체가
콤플렉스가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내팽개치고, 뼈저린 자기 반성도 없이 오로지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만 돌리는 모습은 이전의 조상들
못지 않게 못나 보였습니다. 내가 가난하거나 못났거나
불행하거나 암울하거나 한 것은, 먼저 내게 잘못이 있었
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외부의 잘못도 있겠지요. 하지만
자기 자신을 비판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언제까지나
하염없이 외부를 비난하고 공격할 것입니다. 먼저 나를
돌아보는 것이 지지사의 모습입니다. 남의 잘못도 있지만
나의 잘못도 그에 못잖게 크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지지사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자비심과 사랑이 없는 이들은 자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를 성찰하는 이라면
자비심과 사랑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 공격적인 사람은 현실에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 나라에 대한 콤플렉스의 크기 보다 지금 이 나라에
사는 일부 사람들의 자성 없는 독설들이 지지사를 더욱
슬프게 하는 하루입니다. 그것이 지지사로 하여금 이렇게
잠시 블로그를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종종 포스팅을 하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될
런지...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무고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지지사 올림.

by 지지사 | 2011/03/14 00:53 | 이상과 희망, 작은 바람 | 트랙백 | 덧글(0)

해설과 응원은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세상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보이고 들리니
인간이란 세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나 봅니다. 나란 존재가
타인의 존재를 통해 증명되는 것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요.
        지지사가 어릴 때에는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개장을
했었답니다. 물론 야외 스케이트장이죠. 친구 아버지가 체
육사(당시에는 운동용품점을 이렇게 불렀답니다)를 했었는
데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을 열었지요. 방학내내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답니다. 그때 형들(지금은 중년이 되었을) 중에 참
멋지게 잘 타는 형이 있었지요. 저도 그 나이쯤 되면 그렇게
멋지게 탈 수 있으려나 상상해 본 적이 있답니다. 그런데 제
가 그 나이쯤 되니 야외스케이트장이란 것이 사라져 버렸습
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었을까요? 하하하.
         지금은 스케이트날 뒤쪽이 분리가 되는 놀라운 장비
가 있지만 예전에는 <점보>와 <세이버>(이렇게 정확히 기
억을 하다니 대견합니다)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점보>는
온통 검정색을 한 모양만 스케이트인 셈이었고 <세이버>는
끈을 매는 부분의 색이 달랐던 고급 스케이트였습니다. 이렇
게 그 모양 같은 게 잘 기억나는 것을 보면 즐거웠었나 보군
요. 요며칠 스케이트에 대한 회상을 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참 스케이트 멋지게 타더군요.
          오랜만의 포스팅을 하게 된 이유는 제목에서 적은 것
처럼 <해설>과 <응원>의 차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냥 신나게 즐기면 되지 무슨
성찰이냐는 생각들이 많겠지만 엄밀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기도 하니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사전을 한 번 찾아 보아야 하겠으나 생략하고, <해설>이라는
것의 의미와 <응원>이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야구장에서 하일성 씨가 경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해설>이지만 관중석의 (나를 포함한)우리
가 노래를 부르거나 함성을 지르는 것은 <응원>이지 <해설>
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응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일성 씨처럼 멋진 <해설>을 할 도리는 없습니다. 그것은 일
정한 영역과 전문성을 가진 장르라고 해야겠지요. 그렇기에
<해설>이 <해설>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응원> 이 아니기에
<해설>인 것이고, <해설>이기에 <응원>일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일정한 선을 긋지 않는다면 <해설>이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지요.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응원에 000씨가 수고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나운서 000
였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열심히 고함을 치며 응원해 주신
000씨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해설자 없이 중계한
점 넓으신 아량으로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해설은 없고 응원만이 있는 모습이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주절거려 보았습니다.

*전자책 리더의 시대를 앞에 두고, 50퍼센트 할인 1천 종 도서
선전을 생각하며 뭔가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격동의 시대니 뭐니 하는 타이틀은 라디오에서나 나오는 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by 지지사 | 2010/02/18 23:33 | 세상 관찰 | 트랙백 | 덧글(0)

나의 시간은 내가 정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그림이죠. 그런데 갑자기 작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될 텐데
마냥 귀찮습니다. 제목도 맘에 들지 않지만 바꾸지 않으렵니다.
           새해 첫 날, 저는 전자책 리더기 생각을 했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격동의 시대를 사는 건 과거 조상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이른바 '새해 첫 날'은 누군가 정해 놓고 우리가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죠.
           세상이 우리를 움직이는 건지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인지...
          
            하여튼 최고의 해 중의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위의 아이 눈이 고양이 눈처럼 생겼다는 거 보이시죠. 아이가 사실은 호랑이라는...무리, 무리^^;

by 지지사 | 2010/01/01 15:28 | 빈번히 인사하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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